올해 한국 노사관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 ‘노란봉투법’이다. 손해배상·가압류 요건을 대폭 제한한 이 법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동시에 노사 간 힘의 균형과 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가능성이 크다. 법을 둘러싼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하나의 공통된 전망만큼은 분명하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다시 한번 요동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안이 있다. 바로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대체적 분쟁해결)이다.
우선 노란봉투법의 직접적 효과부터 보자. 그동안 사용자가 파업에 대응하는 주요 전략 중 하나는 고액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를 통해 쟁의행위의 비용을 높이는 방식이었다. 이 전략은 실제 집행 여부와 관계없이 상당한 억지력을 발휘해 왔다. 그러나 법 개정으로 손배·가압류의 범위가 좁아지면서, 사용자 측의 법적 압박력은 줄어들고 노조는 보다 적극적인 파업·투쟁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분쟁의 비용’을 낮춘 조치로 보일 수 있으나, 역설적으로 분쟁의 빈도와 강도는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특히 한국 노사관계 특유의 ‘감정적 에스컬레이션 구조’는 갈등이 한 번 촉발되면 장기전·정면충돌로 번지기 쉽다. 파업의 임계점이 낮아지고, 사용자 측의 대응 옵션이 제한되면, 분쟁이 더 유동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법적 해결 방식—노동위원회 제소, 행정소송, 민사소송—만으로는 대응이 부족하다.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까운 법정 시스템에 분쟁이 더 쏟아져 들어올 경우, 해결까지 수 년이 걸리는 ‘지연의 비용’이 노사 모두에게 전가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ADR이라는 제3의 길이 중요성을 갖는다.
ADR은 소송을 통한 승패가 아니라, 합의와 조정을 통해 빠르고 실질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영국의 ACAS, 미국의 FMCS처럼 선진국의 노사관계는 이미 ADR을 핵심 제도로 받아들여, 파업·갈등을 최소화하고 분쟁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왔다. 이 제도는 단지 “분쟁을 줄인다”는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노사 간 신뢰의 기반을 회복하고, 갈등이 극단으로 흐르기 전 ‘초기介入(early intervention)’을 가능하게 해 준다.
한국에서도 ADR은 일부 시범적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아직 제도화·전문화가 충분하지 않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는 지금이야말로, 제도적·문화적 변화를 함께 꾀할 최적의 시점이다. 손배·가압류로 노사 갈등을 억제하는 방식이 사실상 제한된 이상, 노사 모두에게 새로운 갈등관리 도구가 필요하다. 법적 강제력이 약해진 만큼, 합의·조정의 기술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ADR은 노란봉투법 환경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첫째, 분쟁의 초기단계에서의 개입이 가능하다.
관행적으로 한국의 노사 갈등은 사측의 고소·고발, 노조의 집단행동이 누적된 후에야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다. 이미 갈등이 깊어진 뒤에는 소송 외 선택지가 거의 없다. 반면 ADR은 교섭 결렬이나 파업 이전부터 전문가가 중립적 조정자로 개입해, 감정의 충돌을 구조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
둘째, 비용의 최소화다.
노사분쟁의 직접 비용(생산중단, 파업 손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미지·신뢰·조직문화의 붕괴다. ADR은 이러한 무형 비용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단기간 집중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어, 법정 투쟁 대비 시간·비용 효율성이 압도적이다.
셋째, 합의의 지속 가능성이 높다.
법원 판결은 당사자에게 ‘결정’은 내려주지만 ‘관계’는 회복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ADR은 참여형 합의를 통해 ‘양자 모두가 받아들이는 해결’을 만들기 때문에, 사후 재발률이 낮다. 이는 반복적·구조적 갈등이 많은 한국 노사관계에 특히 유용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부·기업·노조 모두의 인식 전환이다.
정부는 노동위원회 중심의 구도를 넘어서 민간 ADR 전문기관을 육성하고, 조정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기업은 노무 리스크 관리 전략에 ADR 절차를 포함시키고, 노조는 합의 기반 전략을 강화함으로써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노란봉투법이 가져온 ‘법적 억제력의 약화’를 새로운 합의 시스템으로 보완하는 접근이다.
노란봉투법은 단지 손배·가압류를 제한한 법이 아니다. 한국 노사관계의 새로운 게임의 룰을 제시하는 변곡점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갈등의 비용을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고 전환하는 지혜의 기술을 찾는 일이다. ADR은 그 대안이며, 한국 노사관계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 기반이다.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갈등을 다루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노란봉투법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바로 그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