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강경만의 왕릉 이야기⑥ -영릉] 세종과 소헌왕후
  • 강경만노무사 편집위원
  • 등록 2026-10-12 16:39:21
기사수정
  • 여주 영릉(驪州英陵)은 조선전기 제4대 세종과 왕비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영릉은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죽자 광주 서강(西岡) (오늘날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산13번지)에 쌍실 능을 만…

[노무사신문=강경만노무사 편집위원]


1. 왕릉 답사를 시작하며 (답사일 : 2026. 5. 15)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말하지 않는 것들과의 대화, 왕릉! 작은 걸음 큰 울림, 왕릉답사. 오늘은 위대한 성군 세종대왕의 여주 영릉입니다.

2. 세종 이도, 그는 누구인가?


그는 조선의 건국자 이성계의 아들인 태종 이방원의 3남으로 충녕대군 이도. 양녕, 효령이 형. 부인은 심온의 딸 소헌왕후다. 탄생지는 경복궁옆 서촌 이방원의 잠저다. 그는 아버지 이방원이 구축한 왕권이 강화된 통치기반 위에서 권좌에 올라 집현전을 통한 제도의 정비와 유교정치의 구현 그리고 한글창제 와 편찬시업으로 문화융성의 길을 개척하였다.

또한 김종서로 하여금 여진족을 정벌하여 4군 6진을 영토로 편입시켰고, 이종무로 하여금 일본 대마도를 정벌 하였고 장영실 등 과학자를 등용하여 혼천의를 비롯한 여러 과학기기를 발명하는 등 재위기간 중 민족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융성의 시대를 열었다. 한때 영화 최민식, 한석규 주연의 <천문>이 절찬리에 상영되었다.

그러나 아버지 이방원과 달리 자식들의 정치 참여를 용인하여 자신의 사후 왕위계승한 문종이 일찍 서거한후 뒤이어 왕위에 오른 손자 단종이 둘째 아들 수양에게 왕위를 찬탈당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한민족 최대의 발명품 '한글'을 창제하여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함께 특별히 <대왕>이라는 호칭이 붙는다.
3. 여주 영릉(驪州英陵)


조선전기 제4대 세종과 왕비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영릉은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죽자 광주 서강(西岡) (오늘날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산13번지)에 쌍실 능을 만들고 그 우실은 왕의 수릉(壽陵) 으로 삼았다가 1450년(문종 즉위년) 세종이 죽자 합장하였다. 이 능제는 국조오례의 치장조에 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묘제의 기본이 되었다.

세조 이후 영릉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서거정의 반대로 옮기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다시 옮기자는 의논에 따라 지금의 여주로 옮겼다. 능제는 세조가 죽은 뒤부터 크게 바뀌어 병석과 석실제를 폐지하고 회격(灰隔)으로 하여 합장하고 능 앞에 혼유석 2좌를 놓아 양위임을 표시하였다.

여주로 영릉을 옮길 때 천장도감에서 석물도 함께 옮기자고 하였으나, 왕명에 의하여 그 자리에 묻었다. 1973년에 석물들을 발굴하여 청량리 영휘원(永徽園) 북쪽에 세운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겼다. 혼유석, 장명등, 2기의 무관석과 문관석, 4기의 석수, 7기의 망주석과 구 영릉터에 세웠던 세종대왕신도비가 그것이다.

'서울 구영릉 석물', 세종대왕의 무덤인 영릉에 조영되었던 석물. 1452년 조성, 1469년 천장하면서 석물을 땅에 묻음. 1973년 13점이 발굴되어 현재 세종대왕기념관 경내로 이전되어 세종대왕 신도비와 함께 있다. 원찰은 봉미산 신륵사로 남한강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절이다.
4. 훈민정음 역사혼


세종의 백성 사랑
집현전 정의공주
수많은 고뇌 속에
창의적 혁신 활자

완벽히 고안하여
28자의 자음모음
한글을 창제하니
한민족 영원불멸

일제하 독립운동
한글로 언어소통
우리말 독립염원
민족혼 얼을심고

세계속 한류바람
우리글 수출하여
지구촌 물들이며
찬란한 문화강국

5. 영릉 답사를 마치며


어쨌든 조선 최대의 명당터에 자리잡은 영릉의 정기를 받아 여러분 한분 한분께 선물하고 싶은 소확행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득 세종대왕 당시의 강토, 강역으로 돌아가고픈 상상은 이룰수 없는 꿈인가? 역사란 과거의 기록으로 기억이며 추억으로 추쳬험적 이해가 필히 필요하며, 또한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 미래를 찾아가는 끝이 없는 길입니다.


강경만/ (한솔노무사사무소 대표/포천신문 자문위원회 부위원장)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유니세프_01
국민신문고_02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