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소청백Talk] 해고는 정당하든 부당하든 좁은 문이다. 다른 길을 찾아라 (2)
  • 소청백노무사 편집위원
  • 등록 2026-10-20 20:00:45
기사수정
  • - 합의해지, 서로의 다음을 준비하는 공정한 출구 -

[노무사신문=소청백노무사 편집위원]


 안성준 공인노무사 / 강남노무법인

 

앞선 글에서는 고용관계가 해고 분쟁으로 바뀌는 과정과, 정당한 해고조차 양측에 적지 않은 부담을 남긴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다른 길은 무엇일까. 관계를 회복할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했음에도 함께하기 어렵다면, 이제는 누가 잘못했는지만큼 어떻게 헤어질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그때 검토할 수 있는 방법이 합의해지다.

 

합의해지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근로관계의 종료 여부와 조건에 관해 서로 동의하는 것이다. 회사가 사직서를 받아내는 절차 정도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서류의 이름보다 당사자가 실제로 무엇을 알고, 무엇을 선택했느냐이다.

 

합의해지의 첫 번째 장점은 준비할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퇴직일을 협의하면 근로자는 재취업과 생활비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회사도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후임자를 교육하며 고객과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단절로 발생할 혼란을 줄이고, 서로 다음 일정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조건도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다. 법적으로 지급해야 할 임금과 퇴직급여 등을 정산하는 것에 더해, 별도의 지원금이나 일정 기간의 유급 구직활동 시간, 전직지원과 교육, 경력증명과 추천에 대한 협조 등을 논의할 수 있다. 모든 기업이 같은 조건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근로자에게 필요한 것과 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찾아야 한다.

 

가령 회사는 한 달 안에 조직을 개편해야 하지만, 근로자는 다음 직장을 찾기까지 석 달 정도의 생활 기반이 필요할 수 있다. 이때 퇴직일 하나만 놓고 다투면 협의는 막힌다. 그러나 실제 근무와 인수인계 기간, 유급 구직활동 기간, 별도 지원금을 함께 논의하면 양측의 필요를 조정할 여지가 생긴다. 이는 가상의 예시이며, 실제 조건은 업무와 재정 상황에 맞게 정해야 한다.

 

이러한 협의는 양측의 성장 기회와도 연결된다. 회사는 필요한 역량과 업무 구조를 다시 정비할 수 있고, 근로자는 자신의 경험이 더 잘 평가받을 일자리나 새로운 직무를 탐색할 수 있다. 다만 퇴직을 곧 성장이라고 포장해서는 안 된다. 소득의 공백을 견딜 조건과 실질적인 지원이 있어야 ‘다음 기회’라는 말에도 무게가 실린다.

 

시스템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조직의 성과는 특정 개인의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역할의 명확성, 업무량, 평가와 보상, 상사의 의사결정, 동료와의 협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실적이 나빠졌을 때 사람부터 교체하면 원래의 문제가 남아 후임자에게도 같은 어려움이 반복될 수 있다.

 

갈등 역시 순환한다. 사용자의 불신이 통제 강화를 부르고, 통제 강화가 근로자의 위축과 방어적 행동을 낳으며, 협업과 성과의 저하가 다시 사용자의 불신을 키울 수 있다. 여기서 합의해지는 갈등을 확대하는 고리를 끊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에 앞서 역할 조정이나 전환배치, 교육과 평가 개선으로 관계를 유지할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결국 회사가 배워야 할 것은 “다음에는 누구를 내보낼 것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같은 갈등이 반복되지 않도록 채용과 배치, 업무 설계와 관리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까지 돌아봐야 한다. 근로자에게도 자신의 강점과 직무의 적합성을 재점검할 시간이 필요하다.

 

거래비용 이론도 다른 각도에서 시사점을 준다. 올리버 윌리엄슨이 발전시킨 이 이론은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방식을 비교하면서, 계약을 맺고 조정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에 주목한다. 이를 고용관계의 종료에 적용하면, 눈앞의 합의금만으로 비용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해고 후 분쟁에는 대리인 비용 외에도 자료 작성, 면담과 심문 출석, 경영진과 인사담당자의 시간, 업무 차질이 따른다. 근로자도 구직과 학습에 쓸 시간을 분쟁 대응에 쓰게 된다. 결과가 언제 확정될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도 부담이다. 합의에도 협상 비용은 들지만, 조건과 일정을 미리 확정하면 양측이 감당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따라서 별도 지원금을 모두 불필요한 지출로 보는 것은 시야가 좁다. 경우에 따라 그 돈은 분쟁 대응과 사업 차질에 소모될 자원을 근로자의 생활 안정과 전직 준비에 배분하는 선택일 수 있다. 그렇다고 회사의 비용 절감만으로 합의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근로자에게도 계속 근무하거나 권리를 다투는 선택과 비교할 만한 실질적 이익이 있어야 한다.

 

그 전제는 자발성과 공정성이다. “지금 서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압박 아래 받은 사직서로는 좋은 합의를 만들 수 없다. 대법원도 사직 의사가 없는 근로자에게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게 해 근로관계를 종료한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해고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본다. 숙고할 시간, 조건에 대한 설명, 외부 전문가에게 상담할 기회, 거절할 수 있는 선택이 중요하다.

 

퇴직합의서에는 종료일, 법정 금품의 정산과 별도 지원금의 구분, 지급일, 인수인계와 구직지원 조건 등을 명확하게 담아야 한다. 이직사유는 실제 사실에 맞게 처리해야 한다. 실업급여 수급 여부를 회사가 임의로 보장할 수는 없다. 권리 포기나 분쟁 종결 조항도 법적 효력과 적용 범위를 살펴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합의가 성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로자를 비난해서도 안 된다. 근로자는 퇴직 제안을 거절할 수 있으며, 사용자에게는 적법한 인사관리를 할 책임이 남는다. 중대한 비위에 대한 책임 규명이나 피해자 보호가 필요한 사건에서는 당사자 간 퇴직 합의만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합의해지가 모든 사건의 정답은 아니다.

 

그럼에도 관계의 회복이 어렵고 양측 모두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해고의 정당성을 다투는 일에 앞서 합의 가능한 조건을 찾아볼 가치가 있다. 이때 대리인의 역할도 분명해진다. 의뢰인의 권리를 충실히 지키면서, 싸움을 계속할 때의 비용과 합의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을 함께 설명해야 한다. 최종 선택은 충분한 정보를 얻은 당사자의 몫이다.

 

처음 입사를 논의할 때 우리는 함께할 미래를 이야기했다. 헤어짐을 논의할 때도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는 이후의 사업을, 근로자는 이후의 생활과 경력을 준비해야 한다.

 

해고는 정당하든 부당하든 좁은 문이다. 그 문을 통과할 근거만 찾기 전에, 서로 준비할 시간을 갖고 다음 삶으로 나아갈 다른 길을 찾아보자. 공정한 합의해지는 그 길 가운데 하나다.

 

소청백(素淸白) - 안성준노무사 sungjun@k-labor.com 강남노무법인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유니세프_01
국민신문고_02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