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를 본 후, 약간의 역사적 사실을 가미하여 영월 청령포 답사기와 함께 그 소회를 담아본다.
■ 영화 ‘왕사남’이 그려낸 인간 엄흥도와 단종
계유년(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과 한명회 주도의 계유정난이 온 나라를 휩쓸고 제6대 왕 단종은 유배길에 오른다. 영화는 영월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가 고을 사람들을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유치하고, 단종(이홍위)을 감시해야 하는 보수주인이 되어 겪는 휴먼 스토리를 담고 있다. 박지훈(단종 역), 유해진(엄흥도 역), 유지태(한명회 역), 전미도(상궁 역) 등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 영월 장릉과 비운의 어린 왕 홍위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중 하나인 영월 장릉은 ‘노루가 놀던 양지바른 언덕’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명당이다. 이곳의 주인공 단종은 문종의 장남으로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숙부인 수양대군과의 대립 끝에 상왕으로 물러나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천혜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로 향하게 된다. 7일간의 유배길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 계유정난, 그리고 사육신의 도전과 응전
수양대군과 한명회 일파의 쿠데타인 ‘계유정난’ 이후, 성삼문 등 사육신은 단종 복위 운동을 펼치다 목숨을 잃었다. 이어 금성대군마저 복위 계획에 실패하며 단종은 결국 서인으로 강등되었고, 1457년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영월 관풍헌에서 사사되었다.
■ 천만리 머나먼 길, 고운 님과의 영원한 이별
단종이 사사된 후 의금부도사 왕방연은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이별하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아 있네"라며 애끓는 심정을 시조로 읊었다. 한편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 송씨는 동대문 밖 청룡사 앞 동망봉 기슭에 초막을 짓고 평생 소복 차림으로 살았다. 그녀는 조석으로 산봉우리 거북바위에 올라 단종이 있는 동쪽을 향해 슬프게 통곡했고, 그 구슬픈 소리에 주위 아낙들조차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권력의 비정함 속에 핀 이들의 지독한 사랑과 절개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단종이 한양을 그리워하며 관음송과 선문답하던 슬픈 역사의 현장은 이제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는 영화 속 엄흥도의 충절과 역사가 주는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세조가 권력을 장악하고 한명회가 압구정에서 영화를 누리는 동안에도 민초들은 단종의 억울함을 잊지 않았다.
역사란 과거의 기록이자 추억이며, 현재와의 대화 속에 미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계기로 영월 청령포와 장릉이 단순한 유배지가 아닌,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특급 관광명소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 강경만 / 한솔노무사사무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