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주 52시간을 넘어, 이제는 '어떻게 일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 이동신 노무사
  • 등록 2026-08-22 19:53:56
기사수정
  • 지식경제 시대의 노동법은 시간을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자율성, 회복 그리고 건강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노무사신문=이동신 노무사 ]


제목만 보면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글로벌 기술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데 한국은 주 52시간제에 묶여 있는 반면 일본은 연구개발 인력이 더 집중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규제를 유연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기사를 읽었을 때는 다소 불편했다.


근로시간을 제한해 온 것은 노동법 발전의 중요한 역사였다. 장시간 근로는 근로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고, 필요한 노동량이 증가한다면 추가 고용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더 근본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은 사람을 더 오래 일하게 하는 것보다 자동화와 기술혁신,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통해 시간당 생산성을 높이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52시간에 갇혀 있고 일본은 더 오래 일해서 경쟁력을 높인다’는 식의 접근은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하면서 질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근로시간 규제는 어떤 노동을 전제로 만들어졌을까


근대적 근로시간 규제의 역사를 생각하면 산업혁명 이후의 공장노동을 빼놓을 수 없다. 공장 근로자가 하루 10시간을 일하면 그만큼의 노동력이 생산에 투입된다. 근로시간이 길어질수록 피로와 산업재해의 위험도 증가한다. 더욱이 근로자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속도로 일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이 거의 없다.


이러한 노동에서는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가 노동의 투입량과 상당히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8시간, 주 40시간과 같은 시간규제는 근로자를 보호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모든 노동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획자, 연구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변호사와 같은 지식근로자의 성과는 근무시간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어떤 날 세 시간 동안 집중해서 만든 아이디어가 며칠 동안 책상에 앉아 만든 결과보다 훨씬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특정 프로젝트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오히려 하루 열두 시간을 몰입해서 일하고, 프로젝트가 끝난 뒤 충분히 쉬는 것이 업무 특성에 더 적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히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구별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두 가지 기준으로 노동을 바라보자


나는 근로시간 제도를 설계할 때 적어도 두 가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근로시간과 성과의 연계성이다.

시간을 더 투입하면 생산량이나 성과가 그에 따라 비교적 직접적으로 증가하는 업무인가, 아니면 시간보다 창의성·전문성·집중도가 성과를 좌우하는 업무인가.


두 번째는 업무의 실질적인 자율성이다.

근로자가 자신의 업무시간과 방법, 강도와 순서를 어느 정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 아니면 사용자가 이를 사실상 통제하는가.


이 두 가지 기준을 결합하면 노동의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시간과 성과의 연계성이 높고 근로자의 자율성이 낮은 업무에서는 지금과 같은 강한 근로시간 규제가 필요하다. 생산라인의 업무나 사용자의 지휘·감독이 강한 반복적 업무가 대표적이다.


반대로 시간과 성과의 직접적인 연계성이 낮고 근로자의 자율성이 높은 전문직이나 R&D 업무에서는 획일적인 주 단위 근로시간 상한이 반드시 최선의 보호방법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근로자 보호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보호의 방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시간규제를 완화한다면 다른 보호장치는 더 정교해야 한다

자율적인 지식근로자에게 주 단위 근로시간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한다면 그것만으로 제도가 끝나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여러 보호장치가 하나의 패키지로 움직여야 한다.


첫째, 평균근로시간을 관리해야 한다.

특정 프로젝트 때문에 이번 주에 집중적으로 일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 달, 분기 등 일정 기간을 놓고 보았을 때 장시간 근로가 일상화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최소한의 회복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집중근무를 허용하는 대신 하루 업무 종료 후 충분한 연속휴식을 보장하고,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는 실질적인 회복기간을 가져야 한다.


셋째, 근로자에게 거부권이 있어야 한다.

‘자율적인 전문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가 사실상 장시간 근무를 강제한다면 그것은 자율성이 아니다. 근로자가 과도한 집중근무를 거부하거나 비현실적인 업무량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해 평가·승진·보상에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넷째, 건강관리가 필요하다.

평균근로시간, 휴식시간, 건강검진 등을 통해 장시간 근로가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Flexibility + Autonomy + Average Working-Time Management + Recovery + Right to Refuse + Health Protection 이라는 종합적인 패키지다.


그렇다면 업무량도 규제해야 할까


여기에서 또 하나의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회사가 이렇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출근하고 퇴근할지는 자유입니다. 우리는 근로시간도 관리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프로젝트는 금요일까지 끝내십시오.” 그런데 그 프로젝트를 금요일까지 끝내려면 현실적으로 70시간을 일해야 한다면 어떨까. 형식적으로는 자율근무지만 실질적으로는 업무량이 근로시간을 결정한다. 그렇다고 법이나 회사가 모든 업무의 ‘적정 workload’를 객관적으로 계산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같은 보고서를 한 사람은 세 시간에 작성하고 다른 사람은 열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무량 자체를 직접 규제하기보다는 과도한 업무량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관리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장시간 근로가 반복되면 원인을 점검하고, 충분한 회복시간을 부여하고, 근로자가 비현실적인 업무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Workload regulation보다는 workload safeguards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명목상의 자율성’이 아니다 


이러한 제도를 설계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회사가 모든 사무직이나 연구원을 ‘자율적인 전문직’이라고 분류하고 근로시간 규제를 피하는 것이다. 연봉이 높다고 자율적인 것은 아니다. 직함이 연구원이라고 자율적인 것도 아니다. 회사가 업무량과 deadline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업무방법을 세세하게 지시하며, 장시간 근무를 거부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면 그 사람은 실질적으로 자율적인 근로자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직급이나 연봉, 직종 같은 형식적 기준보다 업무시간 결정권, 업무수행 방법의 재량, 업무강도에 대한 통제권, 장시간 근무를 거부할 실질적인 자유를 살펴야 한다.


다시 ‘주 52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처음 신문기사를 읽었을 때 나는 ‘한국은 52시간에 갇혀 있고 일본은 더 오래 일해서 경쟁력을 높인다’는 프레임에 비판적인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국가경쟁력을 단순히 누가 더 오래 일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연구소의 불이 밤늦게까지 켜져 있다고 해서 그 나라의 R&D 경쟁력이 높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그렇다고 모든 근로자를 동일한 주 52시간이라는 하나의 방식으로 보호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야 한다. 고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가진 연구자가 특정 기간 집중적으로 일하고 싶어도 법이 일률적으로 막는다면, 그것 역시 변화한 노동의 모습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논쟁을 ‘주 52시간제를 지킬 것인가, 완화할 것인가’ 라는 두 선택지로 가져가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더 좋은 질문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노동에는 어떤 보호방식이 가장 적합한가?”


시간과 성과가 직접 연결되고 자율성이 낮은 노동에는 강한 시간규제가 필요하다. 반대로 시간과 성과의 직접적 연계성이 낮고 실질적 자율성이 높은 노동에는 일정한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허용하되 평균근로시간, 회복시간, 거부권, 건강보호를 더욱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규제를 강화할 것인가 완화할 것인가가 아니다. 규제를 어떻게 더 정교하게 만들 것인가이다. 산업화 시대의 노동법은 주로 근로자의 시간을 보호했다. 지식경제 시대의 노동법은 시간을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자율성, 회복 그리고 건강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덜 통제하자는 말이 아니다. 노동의 변화에 맞추어, 다르게 그리고 더 정교하게 보호하자는 뜻이다.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유니세프_01
국민신문고_02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